[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이는 부모를 항상 용서한다" 오은영의 정확한 사랑의 언어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20. 11. 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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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용서는 어른을 죄책감에서 구원하는 힘"
"훈육은 언어가 전부… ‘육아 회화’ 모르면 외워야"
"잔소리 빼고 핵심만... 사랑한다면 '정확히' 알려줘야"
"작은 일은 작게 끝내야… 좋은 말로 해야 듣는다"
"육아의 목표는 오직 자립… 맘 편한 아이로 키워라"

정신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 육아 가슴앓이를 해결해주는 ‘국민 멘토’다./사진=김지호 기자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라는 구절은 성경의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온다. 창세기는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성서의 기자는 적고 있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말의 힘도 다르지 않다. 특히 부모의 말은 어떤 검보다 예리해서 아이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육아 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가 130가지 부모의 말을 담은 육아 회화책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냈다. 부모의 말이 육아의 전부라는 신념에서다.

최근 채널A의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그가 펼쳐보이는 ‘오은영 매직'도 화제다. 발톱을 세운 야생동물처럼 뒹굴고 떼쓰고 거칠고 폭력적인 아이들, 눈물짓던 부모들은 그를 만나 경이로운 반전을 이뤄낸다. 아이들은 규칙에 순응하고, 부모는 권위를 되찾는다.

오은영은 매번 상호작용의 사각지대에서 아이의 SOS사인을 읽어냈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로 교착 상태에 빠진 가족을 구출했다. 1시간 넘게 자지러지던 아이가 기진맥진 끝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고 물었을 때, 젊은 아빠는 울음을 꾹 참고 가르친다.

"니가 진정하면 돼. 짜증 난다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포기하지 않는 부모만이 아이에게 찬란한 체념의 순간을 안겨줄 수 있다고, 오은영은 가르친다.

오은영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에 출연했다. 11년간 496명의 아이를 혼돈에서 구조했다. 그가 펼친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아이는 좋은 말로 하면 안 들을 것 같지만 좋은 말로 해야 듣는다.’

가정에 사랑의 질서를 잡아주는 국민 해결사를 만났다. 아침 9시. 여왕처럼 세팅된 머리, 실로폰처럼 높고 화사한 목소리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아이에게 말해주세요. 너는 바람이야. 별이야. 꽃이야.”/사진=김지호 기자

-‘육아 회화’라는 컨셉이 신선했어요. 훈육 언어도 외국어 배우듯 작심하고 외우라고요.

"맞아요. 사실 부모의 사랑은 의심할 수 없잖아요. 저만 해도 이젠 다 커서 180cm 120kg인 제 아이가 여전히 사랑스러워요. 산더미처럼 덮쳐 와도 꼭 끌어안죠(웃음). 그렇게 깊게 사랑하면 모든 게 괜찮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마음만 갖고는 안 돼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의 언어’를 못 배워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요. 진실해도 상처가 생겨요."

-사랑하는 마음이 충분해도...

"마음만으론 안 돼요. 수십 년 간 현장에서 아이와 부모가 아파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어떻게 도움이 될까. 초기엔 의학을 기반으로 아이의 마음을 분석한 ‘마음처방전(2008년)'도 내고, ‘못 참는 아이 욱하는 엄마' ‘화해’까지... 차근차근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을 짚어왔어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결국 ‘말이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전부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쉽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를 써야 한다.’ 회화는 실천이고 실전이잖아요. 외국어 배우는 자세로 ‘사랑의 말'을 배워보자는 거죠."

-살짝 비틀기만 했는데 그 각도에서 아이가 숨 쉴 겨를이 생겨나더군요. 가령 ‘뭘 잘했다고 울어?’대신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줄게’로. ‘징징대지 말라고 했지' 대신 ‘뭘 원하는지 말하기가 좀 어려워?’로. 침착하고 평온한 문장을 통째로 다 암기하고 싶었습니다(웃음).

"외워서 익히면 좋죠. 그래야 빠른 변화를 느끼고요(웃음)."

-그런데 그 화법이 나오려면, 여태껏 익숙했던 관계를 낯설게 봐야겠더라고요.

"정확합니다! 아이는 가장 가깝고 연약한 타인이에요. 그런 아이를 우리는 왜 함부로 대할까요? 익숙해서예요. 그런데 익숙한 게 옳은 건 아니잖아요. ‘다들 그러지 않나?’ 그건 편한 거지 옳은 게 아니죠. 그걸 알면 바꿔야해요. 더 익숙해지면 대물림이 일어나요. 무서운 일입니다. 제가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 청소년, 중년, 노인까지, 모두가 예외없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부모가 준 상처’예요."

130가지 상황별 훈육 구문을 담은 오은영의 신간 ‘어떻게 말해줘야할까’.

사랑이 상처가 되는 불행의 도돌이표를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탬버린을 두드리듯 힘차게 말했다.

-상처를 차단하는 기본 문법이 있겠지요?

"무조건 아이 감정부터 받아주세요. "속상하겠다. 힘들지? 밥 먹으면서 의논해 보자. 방법이 있을 거야." 시험 못 치고 밥도 안 먹는 아이에게 "그러길래 뭐랬어? 열심히 하랬지" 불필요한 말로 짜증에 기름 부으면 안돼요.

청소 못 하는 아이에게 "니 방이 돼지우리인 거 니 친구들도 아니?" 드라마틱하게 모멸감 주지 마세요. "우리 아들, 정리하는 능력은 좀 약하네. 잘하는 게 더 많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아. 고칠 수 있는 건 고쳐볼까?" 차분히 말해주세요."

소모적인 대화 말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말만 하라고 당부했다.

‘그런 마음이 들 만큼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기분 나빴겠다, 그때 친구 마음이 그랬나 보네, 그래도 밀지는 마! 싫다고 해, 누구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씻어야 하는 거야, 원한다고 다 할 수는 없어, 맞아! 바로 그거지, 그건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것을 잘하면 저것도 잘 할 수 있어, 올 한 해도 너 참 잘 지냈어.’-오은영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중에서.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자주 염려하는 내 속의 ‘작은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이를 이해해야 인간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합니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부모와 아이의 대화에서 시작해요. 그런 면에서 육아 회화는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들려주는 거예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불안이 아니라 너그러움입니다.”/사진=김지호 기자

-‘버럭하지 않고 분명하게'라는 가이드가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대체로 많은 갈등이 ‘흥분해서 중언부언하다' 산으로 갈 때가 많거든요.

"교육은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칸트가 그랬어요. 배움의 목적은 오직 ‘인간다워지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성급한 부모는 착각합니다. 따끔하게 야단쳐야 정신 차릴 거라고. 아닙니다. 머릿속에 ‘혼낸다'라는 말부터 지우세요.

야단치고 겁주는 건 그냥 부모가 자기조절이 안 되는 거에요. 사랑과 존중의 자리에 굴복이나 복종을 두면, 그건 교육이 아니에요. 무서워서 따라올 뿐. 단언컨대, 의미도 효과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공포의 메커니즘은 중독성이 있어요. 아이는 맷집이 늘고 부모는 더 세게 바닥을 치죠."

-그럴 땐 아이가 내 안의 괴물을 꺼내는 것 같습니다.

"하하. 당신의 화, 당신의 걱정이 당신을 잡아먹은 거예요. 버럭하면 화는 도드라지고 내용은 불분명해져요. 내용 전달력이 떨어져서 아이 머릿속엔 부모의 화난 얼굴만 남아요. 그걸 모르니 양육자는 ‘몇 번을 말해? 또! 또! 또!’하며 다그치죠. 얼마나 가성비 떨어지는 교육입니까? 좋게 말하면 안 들을 거라는 짐작을 버리세요. 좋은 말로 가르치세요! 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아이들은요… 좋게 말해야 듣습니다."

탯줄 끊어지면 남. ‘아이는 생각과 감정이 다른 존엄한 타인’이라는 분별을 잊지 말라고 했다.

-요즘엔 사회에서도 평등과 존중을 더 많이 얘기합니다. 1/n의 지분으로 함께 가는 동료라는 거죠.

"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존중하라는 말이지 친구가 되라는 말이 아니에요. 부모는 결코 친구가 아닙니다. 허용 범위가 넓으면 아이는 혼돈에 빠져요. 부모라면 가르쳐야죠. 웃으면서 권위 있게."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설명했던 ‘금쪽같은 내 새끼'의 금쪽 아이./사진=김지호 기자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항상 관찰 카메라속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어내더군요. 선생님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거죠?

"(활짝 웃으며)아이는 항상 부모에게 표현을 합니다. 찡그린 얼굴, 닫아버린 입… 그런 현상 안에 양파껍질처럼 아이의 의도가 숨어있어요. 의도가 뭔지를 읽어야 해요. ‘금쪽이' 1회에 나온 민호는 거친 말과 행동으로 분노조절장애라는 눈총을 받았어요. 가까운 사람과 친밀감을 나눠야 하는데 그 그릇 자체가 비어있었죠.

상호작용이 회복된 후 아이가 180도로 달라졌어요. 산에 올라갈 때 엄마 손도 잡아줘요(웃음). 똥꼬가 아픈 아이도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였어요. 아이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 구조 신호를 무시하면 안 돼요. 반복되는 문제 행동은 관찰하고 탐문하고 성찰해야 해요."

-외람되지만,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모습이 말썽꾸러기 반려견을 코칭하는 하는 과정(‘개는 훌륭하다')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기다려’를 가르치고 ‘통제 범위와 권위’를 확실히한다는 점에서요. 기다리는 것과 행동의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미소 지으며)여럿이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생태계의 동식물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생명체의 자리를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여럿과 다 친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평화롭게 지내려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죠. 그게 생활의 질서고 그걸 가르치는 게 훈육이에요.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침범하면 안 돼요. 그 규칙의 기본이 ‘기다리는 것’과 ‘안되는 것’이에요. 적절한 통제, 한계 범위를 알려줘야 자기조절력이 생깁니다. 다만 그걸 가르칠 때 눈 부릅뜨지 말고, 덕으로 가르치라는 거예요."

아이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었다. 사랑을 받자 놀랍도록 빨리 회복됐다./사진=김지호 기자

코로나 블루로 가정 불화가 심해지자 최근엔 작심하고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오늘 육아회화'를 매일 올린다고 했다. "그걸 듣고 어느 날 무뚝뚝한 아빠가 과체중으로 자존감 떨어진 아이에게 연습한 대로 말해줬대요. "니가 내 아들이라 참 좋다"고. 아이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대요(웃음)."

-확실히 사랑의 말은 할수록 늘어요. 그런데 가르칠 때는 말을 길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친절해도 길어지면 잔소리가 된다고. 훈육에서 미니멀리즘이 왜 중요한가요?

"놀이할 땐 말을 많이 하는 게 좋아요. 한계, 경계, 통제를 가르칠 땐 길게 늘어놓는 건 금물입니다. 짧게는 10단어, 길어도 30음절이 넘으면 안 돼요. 왜냐? 잔소리는 감각이 예민한 아이를 짜증스럽게 해요. 문제 상황 생기면 딱 끊고 ‘여기서 오늘 뭘 가르칠까?’에만 집중하세요.

일단 감정 수긍. "알겠어! 니가 장난감 좋아하는 거 알지. 안 사주면 속상할 거야. (전환)그런데, 원할 때마다 다 사줄 순 없어. (결론) 오늘은 안돼!" 이후 소리 지르고 난리 치면 진정할 때까지 반응하지 마세요. "누구는 있는데, 왜 나는 없어. 엄마 미워~" 징징대도 휘말려서 말꼬리 물지 마세요."

-가히 부처의 경지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만(웃음).

"힘들죠. 하지만 반응할수록 새로운 논쟁 주제가 계속 생겨요. 흥분시키지 말고 버텨주세요. 가장 나쁜 상황이 부모가 나서서 "울 일 아니다" "그만 울 때 됐다"고 정해주는 거예요. 아이 입장에서는 부당한 말입니다. 자기 의지로 진정해야 ‘울어도 소용없네'를 깨우쳐요. 그런 다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리면 그때 사주마" 정도로 달래주세요."

-‘기다려!’와 ‘기다려주는 것'을 동시에 구사해야 하니, 부모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중노동이죠.

"네. 그래서 부모는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못 참고 격분하죠(웃음). 그래도 또 해보는 거예요."

-때론 아이가 부모를 떠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가르칠 때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합니까?

"안타까운 게 요즘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꼴을 못 참아요. 애가 입 나오고 징징거리면 부모가 더 불안해서 좌불안석이요. 기분이 나빠도 아이는 스스로 멈춰야 해요. 받아들이는 걸 배워야 자기조절력이 생기고 자기조절력이 생겨야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이가 불행감을 통과하도록, 묵묵히 바라봐주세요. 아이는 그런 부모의 인내를 디딤돌 삼아 체념을 배워요. 체념은 나쁜 게 아니에요.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불편을 수용하는 능력이죠. 할 수 있는 데 안 해버리는 포기하고는 다릅니다."

활화산처럼 역동하던 욕구가 서서히 사그라지는 그 과정은, 보는 자체로 눈물겹다. 자기감정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부모는 안전한 냉각수가 되어 아이의 해열을 돕는다. 어떤 것은 해야 하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는지…. 부모와의 힘겨루기를 통해 아이는 체념을 배운다.

“아이가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나의 마음이 있다는 것, 나의 생각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 달라는 겁니다.”/사진=김지호 기자

문득 템포를 바꿔 새로운 악장을 시작하듯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에게 부모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이에요. 나침반 역할이죠."

-(웃으며)그런데 부모도 미숙해서 그 별빛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어요.

"있지요. 하지만 방향만 제대로 가리키면 돼요. 좋은 말로 못하고 소리 지를 때도 있지요. 그럴 땐 도망가고 싶어요. 죄책감이 밀려들테고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잘못을 아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겁니다." 아이를 오래 키우는 사람은 엄마 아빠잖아요. 자기 안의 사랑의 마음을 절대 의심하면 안 돼요. 반성하는 부모는 괜찮아요. 더 걱정되는 사람은 잘못된 방식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이에요."

-잘못된 방식으로 열심히 하는 부모란 어떤 분들일까요?

"가령 시험 잘 봐서 신나서 온 아이한테 "너보다 잘하는 애들 많아" 하시는 분들. 자만할까 봐 채찍질하고 자극받으라고 비교하시는 분들. "깡통 찬다" "왕따 된다" 불행한 결과를 예언해주시는 분들. 아이는 그럴 때 심각하게 좌절합니다.

어릴 때 느낀 두려움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쳐요. 끔찍히 오래 따라다니는 게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물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간혹 종아리 맞고 정신 차렸다는 분도 있지만 예외예요. 그런 분은 원래 그 부모가 인격이 훌륭한 분이었을 겁니다(웃음)."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아이를 꼭 부둥켜안은 아버지.

-예전에 여배우 이혜영 씨를 인터뷰했을 때 인상적인 말을 들었어요. 아버지 이만희 감독이 귀가하면 자기를 꽉 안아주고 가만히 바라봐주었다고요. 아버지의 뜨거운 포옹을 최고의 유산으로 받았다고요. 부모가 으스러지듯 안아주고 그윽하게 바라봐 주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 사랑법인가, 자문해봤어요. 그 행위가 안전에 대한 감각, 존재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일까요?

"사람 마음 안에는 감정의 주머니가 있어요. 안아주고 바라봐주는 행위는 자동차 기름이 만땅이 되는 것처럼, 감정의 주머니를 꽉 채워줘요. 완전한 충족감이죠. ‘살만한 가치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죠. 사실 칭찬보다 더 근원적인 욕구가 ‘니가 있어도 좋다'는 인정욕구예요.

니가 세모, 네모, 동그라미 어떤 모습이어도 너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거죠. 이혜영 씨의 아버지는 어쩌다 만나도 자신의 멘탈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딸을 안아줬을 거예요. 그 진한 감정의 농도에 접속되면 자존감 배터리가 급속 충전돼요. 생명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라고 해요. 단 몇 초라도 진심을 다해서 안아주라고요."

-사랑은 청각(사랑해라는 말)과 시각(따스한 눈빛), 미각(매일의 밥상)으로도 느끼지만, 그렇게 촉각으로도 오는군요.

"맞아요. 제가 아는 분의 사례를 들려 드릴게요. 사업에 성공해서 부족한 거 없이 사는 여성인데 어느 날 우울감이 걷잡을 수 없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대요. 이분이 어린 시절 형제 많은 집의 막내로 자랐는데, 엄마가 바빠서 자기를 일대일로 대해준 적이 없었어요. 한참 우울하던 중에 문득 한 장면이 거짓말처럼 떠오르더랍니다.

5학년 즈음인가. 하굣길에 저 멀리서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봤어요. 가만 보니 원양어선 타고 나가서 가끔 집에 오는 아버지였어요. ‘달려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아버지가 허리 숙여서 뭔가를 줍더랍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와서 딸한테 들꽃다발을 안겨줬어요. "미순아~"하고 안아주면서.

순간 서먹함은 다 사라지고, 그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답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그 가슴팍에 들꽃 향기가 지금도 기억이 난대요. 우울해도 안 죽고 살아난 건, 그때 그 가슴팍의 감촉과 꽃향기 덕분이라고요."

기억은 그토록 주관적인데, 기필코 살아남아 사람을 살린 기억은 ‘함께 한 빈도가 아니라 강도’였다. 촉각과 후각의 맹렬함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오감으로 부모와의 한때를 감각하고 저장한다. 부모인 우리는 다만 겸손히 기도할 뿐이다. ‘너무 슬펐던 장면은 부디 희미해지길, 너무 기뻤던 장면은 어제 일처럼 싱싱하게, 뇌의 주름마다 남아있길!’

부모의 사랑은 촉각과 후각으로도 남는다.

-성장 과정의 어떤 부분이 선생을 이토록 품이 깊은 의학자로 만들어냈습니까?

"(미소 지으며)저는 키우기 쉽지 않은 아이였어요. 1,900g으로 태어난 미숙아였고, 기질도 까다로웠어요. 밤새 울고 편식도 심하고 자라서는 말끝마다 "왜요?"를 달고 살았죠. 다행히 저희 엄마가 지금 86살이신데 지금도 애들을 참 좋아해요. 제가 자랄 땐, 동네 아이들 6~7명 늘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합리적인 분이었어요.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저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주셨어요. "그 말은 니가 맞다. 어디서 배웠니?" "그건 아버지가 잘못했네. 미안." 한 번도 "여자애가, 감히!" "어린애가, 어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떤 순간에도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모멸감에 빠지지 않도록, 부모는 어린 오은영을 설득하고 보호했다. 억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교육인가.

-도움을 받기 위해 TV에 출연하는 부모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참 감사하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배울 수 있잖아요. 그런 진정어린 행동으로 부모 자식 관계가 변하면 사회 전체가 밝아집니다. 파도를 타듯이요."

-부모의 자격에 대해서 종종 생각합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어요. ‘세상에 나쁜 인간은 있어도 못난 인간은 없다. 자기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요. 무슨 뜻인가요?

"현대인은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의도는 좋아요. 그러나 인간은 어떤 모습이든 가치 있어요. 못나지 않았어요. 못났다고 애쓰는 그 부분의 자존감이 약할 뿐이죠. 부모의 자격이 뭔가요? 부모는 부모예요. 세상에 못난 부모는 없어요. 자식에게 "쯧쯧, 못난 놈" 하면 안 되지요? 마찬가지예요.

간혹 죄책감에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땐 더 나은 엄마가 되려 하지 말고, 자기 결핍을 돌보라고 해요. 노력은 충분해요. 있는 그대로 자격도 충분합니다."

매번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고 솔루션을 내는 ‘오은영 매직’./사진=김지호 기자

-잘못된 노력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 번에 다 해결하려는 노력이요. 작은 일은 작게 끝내세요. 별일 아닌 걸 확대해석해서 ‘기승전 망한 육아'로 만들지 마세요. 틀리면서 조금씩 배우는 거예요. 예컨대 아이가 양치 안 하면, 그것만 다루세요. ‘저러다 이가 다 썩고 사춘기엔 반항아가 되겠지’ 비약해서 완력으로 목욕탕에 끌고 가지 마세요.

부모가 매 순간 너무 비장하면 아이는 편안히 배울 수가 없어요. 육아는 긴 과정입니다. 나침반과 별이 그 자리에 있으면, 오늘 좀 헤매도 다시 제 길로 돌아와요. 훈육은 당장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방향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누구의 과제인지 분별하라'던 심리학자 아들러가 떠오르네요.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로 ‘미움받을 용기'를 쓴 기시미 이치로 선생은 아이에게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 먼저 묻고 ‘없다’고 하면 간섭을 멈추라더군요. 육아의 목표는 자립이라고요.

"맞습니다. 육아가 뭘까요? 사회구성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도록 돕는 거예요. ‘긴 과정, 일관되게, 돕는다’ 이 세 마디가 다죠. 부모들은 제게 물어요. 잘 키우려면 뭐가 중요하냐? 전 무조건 마음이 편안한 사람으로 키우라고 해요. 가까운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면 족하다고.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서 타당하게, 도울 뿐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오 박사님도 육아가 힘겨울 때가 있었나요?

"물론이죠. 저도 많이 미숙했어요. 상처도 많이 받고요. 아들을 늦게 낳았고 부족한 엄마였죠(웃음). 하지만 하나는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때리지 말고 키우자. 힘들 때 위로가 됐던 건 남편이었어요. 그리고 좀 재수 없지만, 전 제 마음이 힘들 때 책을 썼어요. 여러분도 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마음 편한 아이로 키우는 게 최고의 육아라고 말하는 오은영 박사./사진=김지호 기자

-선생의 책과 제 삶을 통해 저는 ‘아이가 부모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를 깨닫고 감격했어요. ‘아이는 웬만하면 부모를 용서하는구나.’ 우문이지만 아이는 어떻게 그토록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반짝이는 눈으로)부모는요, 아이에게 생명 그 자체예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이의 생존을 도와요. 절대적이죠.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 부모를 용서해요. 본능이죠. 아이의 두려움 중 가장 큰 게 뭔 줄 아세요? ‘사랑을 잃을까 봐.'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 손을 놓아도 아이는 금세 다시 잡아요. 금방 용서해줍니다. 아이의 용서가 어른을 죄책감에서 구원해요. 참으로 위대한 힘이죠."

한나 아렌트는 ‘탄생성'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용서의 능력’ 덕분이라고 했다. 어쩌면 아이의 용서 덕분에 부모는 늘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아이가 매일 자라 어제와는 또다른 아이가 되듯, 나 또한 그날의 용서를 받아 어제와는 또다른 부모로 태어난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협동하며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 땅의 부모를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문제가 생기면 마주 보지 말고 시선을 겹쳐 같은 방향을 보세요. 부모는 대체 인력이 없습니다. 부모는 그 자리에 있어 줘야 할 사람이죠. 아이에게 부모는 나무예요. 더울 땐 와서 땀도 식히고 힘들 땐 기대기도 하고 바람 불면 뒤에 숨고. 튼튼하게 버텨주면 부모가 실수해도 아이는 금방 용서해요.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을 땐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한 아이로 클까’ 그것만 염두에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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